"정수기 점검을 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고객님 집으로 향하던 중 생수배달차에 부딪친 적이 있어요. 넘어지면서 (정수기) 필터가 굴러떨어졌어요.
자전거에 깔려 혼자 일어나기도 힘든 상황이었는데 아픈 줄도 모르고 필터부터 주웠어요.
필터를 잃어버리면 돈으로 물어내야 하니까요.
그런 제 모습이 너무 처량해 길에서 대성통곡을 했어요."
웅진코웨이 유니폼을 차려입은 고수진씨가 당시 기억이 떠올랐는지 하던 말을 멈추고 눈물을 훔쳤다.
고씨는 10년째 웅진코웨이 제품을 점검·판매하고 있다. 회사는 그 같은 여성노동자를 코디(코웨이 레이디)라고 부른다. 남성은 코닥(코웨이 닥터)이다.
고씨는 "점검을 위해 방문한 고객 집에서 반려견에 물리거나 하는 여러 가지 사고가 많지만 그럴 때마다 회사는 어떡하냐, 얼른 병원에 가 봐라 하는 말만 한다"고 전했다.
웅진코웨이는 3분기 영업이익 1천403억원으로 역대 최고 실적을 달성했지만, 코디와 코닥은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서 신음하고 있다.
방문판매서비스 노동자는 회사와 위탁계약을 맺고 건당 수수료를 받고 일하는 특수고용 노동자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 정한 특례적용 업종 특수고용직도 아니어서 산재보험 보장도 남 얘기다.
"업무 중 사고·고객 갑질에 무방비"
4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3간담회실. 20여명의 노동자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전국가전통신서비스노조와 김종훈 민중당 의원이 연 '생활가전업체 방문판매서비스 노동자 권익찾기 토론회'에 참석하기 위해 국회를 찾은 이들이다.
그들이 경험담을 하나둘 털어놓자 간담회실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이어졌다.
"저는 가끔 높은 장대 위에 걸어 놓은 외줄을 타고 있는 듯한 심정이 듭니다.
겨우 균형을 잡고 버티고 있는데 한순간에 무너져 안전망도 없는 허공으로 떨어질 것 같은 불안감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어요."
코디로 5년째 일하고 있다는 김순옥씨는 특수고용 노동자로 살아가는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김씨는 "웅진코웨이에서 일하는 동안 저는 다쳐서도, 아파서도 안 된다"며 "건당 수수료로 생계를 이어 가야 하기 때문에 소변주머니를 차고 수술 날짜를 기다리던 순간에도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소비자에게 성희롱을 당해도 손쓸 방법이 없다.
누구도 그들을 보호하지 않는 구조다.
"가스검침원분들이 성희롱·성추행을 당한다는 얘기가 뉴스에 나오는데 남 일 같지 않아 눈을 뗄 수가 없었다"고 운을 뗀 코디 이윤선씨는 "점검하는 동안에 야한 농담을 툭툭 던지거나 음란물을 큰 소리로 틀어 놓고 보시는 분들도 있다"며 "알은체하면 더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무시하고 일에 집중하려 한다"고 말했다.
"사용자 아니라면서…
웅진코웨이, 실적 압박"
웅진코웨이는 코디·코닥과 위탁계약을 맺으며 노동법상 사용자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런데 노동자들은 영업 압박과 '되물림수당' 같은 불합리한 회사 정책을 따를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되물림수당은 소비자가 약정한 기간 동안 제품을 이용하지 않고 중도에 반환할 경우 발생한다.
소비자가 18개월 안에 제품을 반환하면 코디와 코닥은 계약 대가로 회사에서 받은 수수료의 1.5배를 되돌려 줘야 한다. 제품 하자 혹은 단순 변심에 따른 반환인지 여부는 무관하다.
이윤선씨는 "지국의 매출 목표를 채우지 못하면 개인면담으로 이어진다"며 "우리 집 장롱에는 일시불로 산 비데가 들어 있다"고 증언했다. 매출을 채우기 위해 코디·코닥에 직접 구매·렌탈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되물림수당이 발생하는 달에는 고통은 더욱 커진다. 김순옥씨는 "되물림수당이 있는 달이면 최저임금도 안 되는 수수료를 받고 참담한 심정에 빠진다"고 했다. 코디·코닥은 지국에 소속돼 일한다.
웅진코웨이는 지역별 총국을 두고 총국이 지국을 관리한다.
서비스연맹은 이날 웅진코웨이·청호나이스·SK매직서비스 방문판매서비스 노동자 783명을 조사한 결과를 공개했다.
방문판매서비스 노동자는 한 달 평균 222만원을 벌었지만 차량유지비·보험료·주차비 등 필수 지출비용이 월 평균 60만원에 육박했다.
실제 손에 쥐는 돈은 월 162만원 수준인 것이다. 연맹 실태조사는 올해 6월부터 8월까지 이뤄졌다.
하인준 변호사(법무법인 향법)는 "특수고용 노동자는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지만 계약의 형식이 아니라 실질이 중요하고 실제 노무제공이 있었는지가 중요하다"며 "타인의 사업을 위해 노무를 제공한 이상 근로자로 보도록 근기법 정의규정을 바꾸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웅진코웨이 관계자는 "모두가 함께 성장해 나갈 수 있는 방안을 최대한 모색하고 상생하는 노사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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